그럴수록 눈만 높아지고 그런 그림을 만들 실력이 안되는 자신을 원망하기만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례나 투시처럼 객관적 수치화 할수 있는 잣대로 그림을 평가하는법이
포스트모던의 시대에는 별로 중요시 여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화의 허구와 절대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을 부정하는 현시대에서는
모든 이의 주관이 옳으며 그 결과물 또한 옳다.
그렇다면 작가는 작품의 올바름을 주장해야 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을 타인에게 수용시키는데 집중해야 되지 않을까?
그 결과
다수의 수용을 이끌어 낼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 작가가 되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시대의 작가는 지속과 노출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
아니지... 다수라는 객관적 수치에 목메는 순간
허구에 목이 메이는 자기부정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야... 이건 쓸모없는 멍멍이의 외침이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의 장점은
멍멍이의 외침도 멍멍이의 외침이 아닐수도 있다는데 있다.
그래도 나는 멍멍이의 외침은 멍멍이의 외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멍멍이의 외침은 멍멍이의 외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잡스런 생각과는 달리
나는
나는
2400원짜리 내 동화책이
2400원짜리 햄버거와의
2400원짜리 햄버거와의
가치 경쟁에서 이기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다.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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